[충청투데이 강대묵 기자] 남달랐다. 직업계고 출신이라 그랬을까. 명확한 꿈과 목표를 품고 있었다.
의젓했다. 풍파를 겪은 듯한 몸짓과 말투, 그리고 표정에 진지함이 녹아있었다.
또래 친구들이 대학캠퍼스에서 샤랄라 꽃무늬 원피스를 휘날릴 때 ‘20살 사장님’은 기름때 가득한 앞치마를 둘러맸다. 꽃다운 시절은 잠시 반납했다. 10평 남짓한 타코야끼 매장에서의 일상은 다람쥐 쳇바퀴 같아 보였지만, 꿈을 향한 발돋움이었다.
힘겨웠지만, 선택은 옳았다. 낯선 한 손님은 매장 벽면에 ‘정말 맛있어요, 또 올게요’ 후기를 남겼다. 며칠 뒤 그 손님은 다시 매장을 찾았다. 그러한 손님들이 한 명, 두 명 늘기 시작했다. 그만큼 꿈을 향한 보폭은 커져갔다.
하루해가 짧은 일과였다. 늦은 새벽 집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쳐도 지워지지 않는 기름냄새를 안고 쪽잠을 청했지만 ‘달콤한 꿈’을 꿨다. 꿈은 늘 ‘대한민국 외식업계 최고의 명장’을 그렸다.
세종시 장영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24년 봄날 ‘굴림타코야끼 세종 새롬점’의 간판을 내걸고 창업 전선에 뛰어든 20살 신나혜 사장. 그녀는 직업계고 선택을 고심했던 지난날을 회상했다.
신 사장은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스스로 요리 동아리를 만들 정도였다. 중학교 재학 중 진로를 고민하다가, 대학보다는 현장에 일찍 나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세종 장영실고 외식조리과를 선택했다”고 전했다.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장영실고 외식조리과는 산업현장을 방불케 했다. 신 사장과 같은 꿈을 꾸는 학생들은 넘쳤다.
신 사장은 3년간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전문 조리인이 되기 위한 이론과 실기능력을 연마했다. 조리(한식, 양식, 중식, 일식) 실습, 제과실습, 제빵실습, 바리스타 실습, 급식관리, 식품과 영양, 식품 위생, 조리실무영어 등의 교육도 병행됐다. 그 과정에서 경쟁심은 커졌다.
졸업 전 6개의 자격증을 땄다. 한식, 양식, 중식 조리기능사와 제과·제빵기능사, 바리스타 자격증을 획득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장영실고 재학 중 한국조리협회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국제요리 제과 경연대회’ 라이브 부문에서 2년 연속 대상 1회, 금상 2회의 영예를 안았다. 창업진흥원이 열고 있는 비즈쿨 창업경진대회에서도 수상의 기쁨을 만끽했다.
신 사장은 “장영실고 학생들은 게임 스테이지를 밟듯 꿈을 이루기 위해 자격증을 획득하고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서로 아름다운 경쟁을 펼치는 과정에서 수많은 결과물을 안게 됐다. 특히 장영실고 내에는 한식, 양식, 일식 등 수많은 동아리들이 있는데, 그 동아리 활동이 큰 도움이 됐다. 친구들의 땀방울에 자극을 받고 더욱 정진했다. 동아리에서 처음 중식도를 잡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신 사장의 학창시절은 치열했다. 학업의 연장선으로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책장에서는 만날 수 없는 ‘현장의 가르침’을 엿보기 위해서다.
신 사장은 “고교 3년간 일식당, 양식당, 한식당에서 홀서빙부터 주방일, 배달까지 모든 경험을 했다. 외식업계의 전반적인 과정을 깊숙히 들여다보고 싶었다. 상권의 흐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훗날 창업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 아르바이트 비용 덕분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부모님의 용돈을 받을 적이 없다. 저는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를 적극 추천한다”고 말했다.
혹자는 직업계고 학생들은 ‘공부와 거리가 멀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신 사장은 하교 이후 일본어, 영어, 수학 등의 학원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도 상권 탐색전은 병행됐다.
그녀는 “일식에 매력을 느껴 언젠가 일본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외국어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학원을 오가는 길에 어떠한 간식을 찾는지도 유심히 살폈다. 학원가를 맴도는 학생들은 늘 배가 고팠다. 저렴한 가격에 간단히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음식이 ‘타코야끼’라는 것도 그 당시 생각해낸 것이다”고 전했다.
신 사장은 직업계고를 결코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니라고 조언했다.
신 사장은 “나는 공부를 못해 대학을 가기 어려워 직업계고를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큰 코 다친다. 직업계고는 공부도 해야하고, 요리·자기개발도 해야하고, 그리고 재학시절 중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곳이다. 최선을 다하는 학생은 재학시절 꿈을 향해 높은 곳까지 오를 수 있다. 일반계고 학생들은 대학 진학 이후 무슨 일을 할지 고민하지만, 직업계고 학생들은 고교시절 뚜렷한 꿈을 지닌다. 사회를 먼저 경험해 볼 수 있는 곳이 직업계고다. 물론 대학도 갈 수 있다. 선 취업 후 진학의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등록금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 사장은 취업, 대학진학, 유학, 창업을 저울질했다.
졸업식 이전 외식업계 대기업에 당당히 합격했지만, 한 두 달 경험 후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현장의 끌림’이 컸기 때문이다.
외식업계에 종사하는 부모님 앞에 서서 자신만의 창업 계획서를 펼쳐 들었다. 아르바이트 비용을 모아뒀지만, 창업자금이 부족한 탓이었다. 부모도 넉넉한 삶은 아니었다. 그래도 ‘일본 유학비용만큼은 마련해주겠다’는 부모님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신 사장은 “부모님께 유학비를 창업비용으로 쓰겠다고 부탁했다. 부모님의 지원금은 반드시 갚겠다는 체계적인 각서까지 썼다. 반드시 성공해 동생의 학비와 부모님의 노후까지 책임지겠다는 야심한 계획도 밝혔다”고 말했다.
신 사장의 올곧은 삶을 지켜본 부모님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 사장은 신생 프렌차이즈를 살펴봤다. 메뉴는 학창시절 상권 탐색을 통해 결정한 ‘타코야끼’였다.
그녀는 “신생 프렌차이즈는 제약이 없어, 내부 인테리어도 개성을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지금의 업체를 선정했다. 주요 고객인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는 실내 인테리어를 진행했다. 포토존도 꾸미고, 메모판도 만들었다. 반응은 좋았다”고 밝혔다.
신 사장은 ‘대한민국 외식업계 최고의 명장’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 10시간 넘게 타꼬야끼를 굴리고 또 굴린다. 그렇게 꿈을 향해 다가서고 있다.
신 사장은 “직업계고인 장영실고는 오늘의 내 모습을 이루기 위해 큰 도움이 됐다. 많은 노력을 했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성공은 노력에 비례해 찾아온다”고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